내용 |
“과학기술계 출연연이 국민을 설득하고, 정부와 소통하며, 출연연 상호 간에 교류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로 인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 지금 가장 큰 문제다.” 과학기술계 인사들은 현재 출연연의 근본적인 문제로 '소통의 부재'를 들었다. 연구기관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정부, 이로 인해 권한도 책임도 없어진 출연연의 일부 연구자의 안일한 모습 등이 국민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달라진 환경에서 과학기술계 출연연이 제 2의 르네상스를 맞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발전의 씽크탱크로서 국가 아젠다 연구개발 사업을 창조적으로 선도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됐다. 지난 11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정부 출연연의 바람직한 역할 방향과 효율화ㆍ일류화 추진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현재 출연연이 맞닥뜨린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폭넓게 진단하고 제시했다. 출연연, 국가 R D '프로젝트 매니저' 자임해야 김상선 과총 사무총장은 정부 출연연의 40년 역사와 성과를 돌아본 뒤 바람직한 역할 방향으로 “국가혁신체제를 창조적 #8228; 선도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출연연의 새로운 역할로 ▶미래 기초 원천 및 공공복지 기술의 연구개발 ▶정부 각 부처 국가연구개발사업의 프로젝트 매니저 ▶국가 싱크탱크 ▶국제 과학기술 협력창구 ▶고가 연구 장비 구입 및 공유 지원 기능 등을 꼽으며 “출연연은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연구임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기업 연구소가 담당하기 어려운 부문의 연구개발을 맡으면서 타 연구주체와 경쟁관계가 아니라 선도하면서 보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철구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출연연의 사회적 책무성에 비쳐 본 발전 방향으로 지역혁신과 발전 방향을 맞출 것, 산학연 공동협력체로서 개방성을 확대할 것, 고급과학기술 인력 양성 기능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민 위원은 특히 인력양성 기능에 대해 “출연연이 인력 양성 측면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에 눈을 뜰 때가 되었다”며 “또 하나의 대학이 되자는 것이 아니라, 동료 겸 제자로서 R D 인력의 교육과 연구가 출연연에서 맞물려야 한다”고 말했다.민 위원은 또 출연연이 이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공성과 탁월성, 개방성이 필요하다며 “공공적 부문의 연구에 있어 탁월성을 보이기 위해 개방성이 필요한 것”이라고 정리했다. 출연연의 연구성과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학문과 산업, 기술이 함께 발달해가는 '사이언스 비즈니스' 개념이 제시됐다.조성복 기초기술연구회 전문위원은 연구성과의 사업화 유형으로 기술이전 전담조직(TLO), 연구소 기업, 기술지주회사 등의 사례를 적시하며 “기존 기술사업화의 관점에서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 급진전되고 있는 사이언스 비즈니스의 관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 대상 아닌 주체로 거듭나야 이어진 토론에서는 출연연이 처한 현실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왔다.먼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의 대상'으로 꼽혀 온 출연연의 위상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문길주 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원장은 “출연연이 변화에 거부감을 느껴온 것이 아닌데도 항상 정부가 변화를 요구하고 출연연은 변화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어 온 느낌”이라고 토로했다.과학전문기자인 박방주 중앙일보 부장은 “출연연을 20년 동안 출입했지만 요즘처럼 답답한 적은 없었다”며 “인사문제와 사기 문제, 인건비 지원, 관련 정책 등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데 이 문제를 몰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의지가 부족해 해결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박 부장은 출연연 연구자들의 사기 문제를 주요하게 지적하며 “출연연 연구자 정년이 대학교수 정년 65세에 비해 4년 짧다는 사실이 사기 문제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 정책이 출연연 피폐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은 정책의 실패가 연공서열에 의한 평등주의와 안일한 자세를 초래해 일부 (출연연 연구자) 시니어 그룹은 후배들이 특허나 논문에 자기 이름을 올려주는 것으로 연명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로부터는 좀 더 솔직한 얘기가 나왔다. 노환진 교과부 연구기관지원과장은 “PBS 제도로 인해 개인과 기관의 역량은 퇴보했고, 평가제도도 미흡해서 자율적이어야 할 연구를 전문성이 부족한 공무원이 평가하다보니 공무원들은 출연연 예산을 예산먹는 하마 정도로 인식하게 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노 과장은 “선진국의 정년 제도와 원장의 임기제도, 적정한 인력 규모 등을 외부용역을 맡겨 연구 중”이라며 “이 연구 결과가 나오면 현장의 목소리를 더 수렴한 뒤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 핵심은 출연연 자율성과 독립성 PBS 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 방향도 제시됐다.송병선 기획재정부 연구개발예산과장은 “금년 들어 PBS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선해서 2011년까지 출연연 인건비의 70%까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송 과장은 “교과부는 정부 예산으로 출연연의 인건비 비중을 높이자는 의견이었고, 지식경제부는 자체 사업비 지원 비중을 높이자는 의견이 우세했는데 두 가지 모두 개선하지 않으면 연구 환경개선이 어려우므로 인건비와 사업비 모두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덧붙였다.PBS 제도의 개선은 대다수 토론자들의 환영과 기대를 모았으나 일부에서는 '문제의 핵심은 기관운영의 독립성'이라며 비판론을 냈다. 이광오 전국공공연구노조 정책국장은 “지금 연구현장에서 가장 갈급해하고 있는 사안은 기관 운영의 자율성과 독립성”이라며 “인건비가 70% 확보된다고 해서 자율성이 확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국장은 “10년 전 연구회 출범 당시 출연연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목적이었는데, 예산과 인력에 대한 권한이 없어 요원하기만 하다”고 비판했다. 연구회 조직에 대한 문제제기는 출연연 내 인력 교류 측면에서도 제기됐다. 전승준 고려대 화학과 교수는 “연구회 창립 당시는 출연연과 출연연 사이의 인력 이동까지도 염두에 뒀을 텐데 정작 지금은 출연연 내부에서 조차도 팀끼리 인력의 이동이 힘들다고 한다”고 지적했다.이같은 현실로 인해 대학과 차별화해서 '대형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소만의 강점이 퇴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연구회를 포함한 출연연 조직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현병환 생명공학연구원 정책연구센터장은 조직 내 소통 문제를 지적하며 “PBS 제도가 시행되면서 연구소가 소규모 팀으로 쪼개져 옆 팀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게 됐다”고 지적했다.현병환 소장은 인력 양성에 대해 “생명연의 경우 연구자의 특허교육을 강화하고 기술경영(Management of Technology, MOT) 소양 교육을 강화하니까 그 효과가 몇 년 뒤에 기술 계약 건수가 아닌, 금액이 늘어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사업, '자율적' 선정과 '과학적' 평가 필요 조성재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고문은 연구사업 선정에 있어 출연연의 자율성 부여를 강조했다.조성재 고문은 “정부가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같은 예산의 비중이 70%에 달한다”며 “사업선정을 출연연이 못하고 있기 때문에 책임질 것도 없어져서 권한과 책임이 모호해 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고문은 “국가 과학기술 R D 사업의 프로그램 기획은 정부가, 프로젝트 기획은 연구회 중심의 출연연이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과제의 평가와 관리에 대한 문제도 지적됐다. 조성재 고문은 “논문 수나 특허 수로만 줄을 세우는 외형적 평가가 강화되고 있다”며 “이런 문제가 사업의 부실화를 초래하고 결국 국민과 출연연 연구자, 정국 당국자와의 신뢰 격차를 커지게 하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장재 과학기술기획평가원 선임본부장은 평가 과정에 있어 보다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의 도입을 주문했다.그는 “미국 NIH의 경우, 평가에 필요한 요소가 100여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연구자는 DB를 입력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연구전문 행정직원이 정리하게 되어 있다”며 “이같은 방식은 연구자의 부담을 줄일 뿐 아니라 전문 평가 기관의 평가를 통해 자료를 DB화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개발 사업의 기획과 관리의 이원화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청중석의 한 토론자는 “연구과제를 선정하는 기관과 연구를 전담 관리하는 기관이 이원화 되어 있는데 이 과정에서 관리기관이 연구자의 중간 관리자처럼 비쳐져 연구자의 자존심을 적잖이 상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목표 뚜렷하지 않으면, 국민 신뢰 회복 어려울 것”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환진 과장은 “출연연에 대한 투자가 계속 됐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대상으로 비쳐졌던 것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불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결국 출연연을 믿음직스럽게 바라보는 국민의 관심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도 “출연연이 정확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없으면 국민을 설득하고 사회적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공감했다. 송 교수는 “문제는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다는 데 있으며, 평가를 해도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별 영향도 없다는 것”이라고 출연연의 문제를 진단했다. 이 날 토론회에 참석한 김중현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은 “대통령께 출연연의 현실에 대해 정년, 연금, PBS 제도 세 가지를 말씀드린 적이 있다”며 “정부 출연연의 어떤 점이 잘못됐고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 최선을 노력을 기울여 관심을 갖고 한 가지라도 바꿔나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글_정책홍보팀 hkim@kofst.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