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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정보

19세기 眞殿 및 御眞奉安處 운영에 대한 연구

논문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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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명 NDSL
저널명 藏書閣
ISSN 1229-7755,
ISBN

논문저자 및 소속기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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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한글)
저자(영문)
소속기관
소속기관(영문)
출판인
간행물 번호
발행연도 2011-01-01
초록 nbsp; nbsp;조선 후기에는 선왕의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진전과 초상화를 봉안하는 봉안각이 운영되었다. 숙종대에서 정조대를 거치면서 진전(서울의 궁궐 안 선원전과 도성 안의 영희전)은 종묘에 버금가는 왕실 조상의 기념장소로 자리 잡았다. 강화도와 사친의 사당에도 봉안각을 만들어 장소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nbsp; nbsp;19세기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진전정책의 기조는 기본적으로 유지되었다. 純祖代 정조가 공들여 키워왔던 화성에 華寧殿을 지어 강화부의 長寧殿에 짝하는 외방 진전으로 성립시킨 것을 제외하고는 진전정책의 새로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순조의 생모의 사당인 景祐宮이 어진 봉안의 새로운 장소가 된 것도 英祖代 毓祥宮과 正祖代 景慕宮에 봉안각을 마련했던 전례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眞殿의 室數가 종묘와 같이 되어 국가의 공식 제사가 늘어나는 것을 염려하였던 영조의 염려는 현실화되어 璿源殿과 永禧殿의 室數는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先代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수반되지 않은 채 선대 영정을 眞殿에 봉안하면서 眞殿이 가지는 위상은 이전에 비해 오히려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철종의 영정이 공식 진전에서 배제되는 과정은 왕실 승계와 기념에서 혈통이라는 사적원리가 중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제국 선포 이후 高宗이 선대 국왕들을 皇帝로 추숭하는 작업과 함께 태조의 어진을 선원전에도 봉안함으로써 原廟로서 기능하고 있었던 궁궐 내 진전인 璿源殿에 永禧殿과 같은 위상을 부여하려 했다. 그러나 도성 안에서 백성들의 기념 장소로도 기능했던 영희전과 달리 선원전은 왕실의 기념 전각일 뿐이었다. 기울어가는 國運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에서 궁궐 안의 그 眞殿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었다. 1907년 궁궐 밖 모든 진전이 철폐됨으로써 2세기 동안 궁궐 안팎에서 국왕 권위를 상징해왔던 眞殿의 기능 또한 끝나게 되었다.
원문URL http://click.ndsl.kr/servlet/OpenAPIDetailView?keyValue=03553784&target=NART&cn=NART6986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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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표준분류
ICT 기술분류
DDC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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