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
nbsp; nbsp;도자기를 물질문화적 관점으로 보려는 시도는 일정한 환경에서 도자기가 그것을 사용하거나 제작하는, 혹은 판매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며,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이다. 조선 후기를 지나면서 도자기에 대한 물질적 관심은 농후해져, 기물이 가지는 위계나 정해진 본연의 용도 및 사용 계층의 고전적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왕실 관요에서 만든 자기들조차 개인이 소유하려는 세속적 취향과 욕망을 보여준다. 도자기를 수장하고 감상하는 취미 자체는 탈속적인 것이었지만, 그 자체가 새로운 세속적 욕망으로 자리하면서 도자기의 사용과 생산, 유통에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nbsp; nbsp;국내에서 중국산 도자를 비롯, 자기를 완물로 인식하면서 수집, 감상, 구매, 품평했던 사회적 현상은 18세기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추측된다. 또 도자기 가운데는 백자 문방용품과 화분, 중국자기, 고려청자 등이 빈번하게 기록에 거명되는 종류였다. 특히 왕실의 예물이나 개인의 수집품 가운데는 고려청자와 중국자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도자기로 만든 문구류는 상대적으로 크게 발달하는데, 이는 완물(玩物)로서 문방용품이 문인들에게 가장 애호되었기 때문이다. nbsp; nbsp;한편, 중국과 조선의 교류에서 도자의 유입이 적지는 않았으나 왕궁이나 도성 내 주요 유적출토품과 궁중전세품 등을 보면 그림에 등장하는 것만큼 다양하지 않고, 그 수량도 매우 적다. 그러므로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지는 기명류 그림들은 단순히 '고동수집' , '문방청완'이라는 취미적 활동과 욕망 표출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그릇들을 구비하고 격식에 맞춰 그려넣음으로써 현실과 조화된 이상적인 서실書室또는 다실茶室, 향각香閣의 책과 기물을 재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시간의 변화에 따라 하나의 상징물로 이미지가 고정된 완물 종류 외에 동시대에 선호되던 중국 및 조선의 자기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요소로 추가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nbsp; nbsp;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그리고 최근수년간 국내 회화사 연구에서 회화 수장의 역사가 수집가와 수장 공간, 수장목록, 경향 등 여러 관점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진 것에 비하면, 고려에서 조선에 걸친 시기에 도자기가 수집과 감상의 목록 등에 수록되어 뚜렷한 자취를 남긴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향후 서화수장 목록처럼 도자기를 비롯한 완물 공예품의 목록이나 명칭근거 등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