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태조 미추왕과 은하수 星漢
기관명 | NDSL |
---|---|
저널명 | 韓國古代史硏究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ISSN | 1226-6213, |
ISBN |
저자(한글) | |
---|---|
저자(영문) | |
소속기관 | |
소속기관(영문) | |
출판인 | |
간행물 번호 | |
발행연도 | 2011-01-01 |
초록 | 통일신라시기부터 고려초까지 금석문에 등장하는 태조 星漢王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인 味鄒王으로 보인다. 성한왕 즉 미추왕이 금석문에서 문무왕의 15대조이고 흥덕왕의 24대조로 나타났던 것은 부자조손 관계에 따른 혈통세대수 뿐만이 아니라 왕위계승 순서에 따른 왕통세대수를 혼합하여 세대수를 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일신라 때에는 제왕은 북극오성이 강림하여 탄생하며 제왕의 상징인 북극오성은 은하수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했다. 따라서 은하수는 中代 왕실의 관념적 시조였다. 중대 왕실이 은하수를 뜻하는 '漢, 星漢'을 써서 시조 미추왕을 漢王 또는 星漢王이라 불렀던 것은 그 때문이다. 성한왕이라는 별명은 미추왕이라는 본명의 소리와도 관련되어 있다. 은하수를 뜻하는 방언 '미리내'가 용을 뜻하는 '미리'와 하천을 뜻하는 '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은하수를 하늘의 용으로 생각해 왔다. 그런데 '味鄒'는 '미소[misV]'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었고, 음운학적 법칙에 따르면 중세국어에서 龍을 뜻하는 '미리[mirV]'는 고대국어에서 '미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미소는 용이고, 용은 은하수이므로 미소왕 즉 味鄒王에게 星漢王이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고려 왕조의 개창과 더불어 은하수가 신라 왕실의 시조라는 관념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은하수의 역할을 왕건의 증조부인 國祖 損乎述이 맡게 되었다. 따라서 미추왕에게 성한왕이라는 별명을 더 이상 부여할 수 없었다. '星漢王'이 고려 초부터 보이지 않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
원문URL | http://click.ndsl.kr/servlet/OpenAPIDetailView?keyValue=03553784&target=NART&cn=NART69848128 |
첨부파일 |
과학기술표준분류 | |
---|---|
ICT 기술분류 | |
DDC 분류 | |
주제어 (키워드) | 미추왕,성한왕,세대수,용,은하수,King Michu,Seonghan,generations,dragon,the Milky W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