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령기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간 거문도 사람들
기관명 | NDS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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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명 | 韓日關係史硏究= (The)Korea-Japan historical review |
ISSN | 1229-3687, |
ISBN |
저자(한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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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영문) | |
소속기관 | |
소속기관(영문) | |
출판인 | |
간행물 번호 | |
발행연도 | 2011-01-01 |
초록 | nbsp; nbsp;거문도인들이 울릉도에 도항하여 경제활동을 한 사실은 100여 년 이상 지속되어 온 것으로, 노동요나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거문도와 울릉도를 왕래하며 교류한 사실을 증명할 구체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거문도에는 '울릉도로 나는 간다'라는 노동요와 울릉도의 나무로 만든 생활용품이 남아있는 것이 고작이다. 또한 이 두 지역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인적 교류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것은 아마도 촌락 단위로 도항한 거문도인들의 강한 결집력 때문인 듯하다. 전라도인들이 울릉도로 건너가서 경제활동을 한 사실은 1882년 검찰사 이규원의 보고서를 통해 알려졌다. 전라도인들이 울릉도에 건너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독도가 보이는 울릉도에서 매년 계절적 어업에 종사하였으며, 울릉도 #x2024;독도를 생산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울릉도 개칙령이 반포되자, 울릉도를 개척하는 데에 큰 공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과 이에 대항하여 조선 정부가 시행한 여러 가지 법적 규제로 결국은 배제되고 말았다. nbsp; nbsp;이러한 측면에서 거문도인들이 울릉도에 도항하여 어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어업공동체의 완전한 해체뿐만 아니라, 울릉도 역사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1903년경 일본인으로부터 어 업을 전수받고 조선인들이 독도를 인지하였다는 주장은 최소한 100여 년 전부터 울릉도로 도항하여 벌인 어로활동을 배제한 연구결과에 근거한 것이다. 앞으로 독도 영유권과 관련하여 울릉도를 생활터전으로 삼았던 거문도, 초도, 손죽도 어민들의 울릉도 도항과 독도나무를 베어 온 이들의 어로 활동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고 본다. |
원문URL | http://click.ndsl.kr/servlet/OpenAPIDetailView?keyValue=03553784&target=NART&cn=NART69891192 |
첨부파일 |
과학기술표준분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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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 기술분류 | |
DDC 분류 | |
주제어 (키워드) | 거문도,울릉도 도항,전복,미역,잠수어업,미역세,조선업,Geomun-do fisherman,Ulleung-do passage,ear shell,brown seaweed,submergence fishing,brown seaweed tax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