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광개토왕대 불교와 유교의 전개양상
기관명 | NDS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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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명 | 韓國古代史硏究 = The Journal of Korean Ancient History |
ISSN | 1226-6213, |
ISBN |
저자(한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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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영문) | |
소속기관 | |
소속기관(영문) | |
출판인 | |
간행물 번호 | |
발행연도 | 2012-01-01 |
초록 | nbsp; nbsp;고려의 불교는 소수림왕대 공인되었다. 광개토왕은 391년 '천궁영락' #xFF65;'열반영락'이란 불교적 의미의 영락이란 연호를 사용하였다. 불교적 의미의 영락연호는 전량과 명나라에서도 사용된 적이 있다. '불법을 믿어 복을 구하라'라는 조서를 내려 백성들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평양에 9사를 창건하여 중앙을 중심으로 팔방으로 뻗어나가는 불법과 왕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평양의 불교는 소수림왕의 공인보다 앞선 357년의 안악 3호분에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408년에는 덕흥리 고분의 피장자가 석가문불제자라 칭할 정도로 널리 퍼져나갔다. 395년 이전 광개토왕이 요동을 정벌했다는 능비의 영락 5년 기사는 『양고승전』 담시가 395년을 전후하여 고려의 요동에서 불법을 전한 것으로 뒷받침되고 광개토왕은 이곳에 육왕탑을 건립하여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nbsp; nbsp;본격적인 유학의 수용은 소수림왕대 태학의 건립으로 시작되었다. 광개토왕은 국사[사직]를 건립하고 종묘를 수리하여 유교적 예제질서의 기반을 다져 놓았다. 능비에 묘상을 정비하고 수묘인을 둔 것도 효에 기반한 유교이념의 전파라 할 수 있다. 덕흥리 고분에는 주공과 공자와 무왕이 언급되고 있다. 능비에는 『시경』이나 『맹자』 등에 바탕한 구절이 보이며 왕도정치에 입각한 유교적 위민정치가 보인다. 능비에 보이는 광개토왕의 상장례를 검토해보면 고려의 상장례가 복상이 아닌 빈장으로 치러졌음을 알 수 있다. 영락 연호를 유년칭원으로 계산하면 광개토왕의 3년상은 36개월의 3년상이 된다. 당시 중국의 3년상이 27개월임을 감안하면 36개월의 3년상은 고려적 요소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nbsp; nbsp;불교와 유교는 동전의 양면이나 수레의 두 바퀴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영락 2년, 불법을 믿으라는 교서와 국사의 건립 및 종묘의 수리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나, 덕흥리 고분에 석가문불제자라 일컫는 유주자사 진이 무덤을 쓰는데 주공 #xFF65;공자 #xFF65;무왕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광개토왕대 정비된 유불정치이념이 당대의 사상계를 장악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능비에 의하면 천손에 입각한 추모의 건국신화가 당당히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려 건국 이래 면면히 이어 내려온 신화적 세계관, 광개토왕대 중앙과 남북으로 펼쳐진 불교적 세계관, 덕치에 의한 통치 질서의 기반이 된 유교적 세계관의 정비는 새롭게 국가를 일신시키려는 국호개정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
원문URL | http://click.ndsl.kr/servlet/OpenAPIDetailView?keyValue=03553784&target=NART&cn=NART69873238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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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키워드) | 광개토왕,불교,유교,영락연호,국호개정,36개월 3년상,King Gwanggaeto,Buddhism,Confucianism,exchanging the name of Kingdom,Youngrak[永樂] era,thirty-six months quot,s funeral service |